넥플릭스 <오징어 게임>에 대한 전세계적 흥행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넥플릭스 구독자가 아니어서 아직까지 시청하진 못했지만 유투브로 전반적인 스토리와 유명한 장면들을 보았다. 화려한 컬러와 순수한 놀이를 소재로 한 잔인한 살인 드라마였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즐겨 보는 전세계적 풍조를 바라볼 때 많은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안치환의 노래로 더 잘 알려진 정지원(1970-)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정지원
단 한 번일지라도
목숨과 바꿀 사랑을 배운 사람은
노래가 내밀던 손수건 한 장의
온기를 잊지 못하리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도
거기에서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리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길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가는지를
누가 뭐래도 믿고 기다려주며
마지막까지 남아
다순 화음으로 어울리는 사람은 찾으리
무수한 가락이 흐르며 만든
노래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뜻을
시를 곱씹어 읽어보면 외로운 가운데 노래를 통해 사람이 서로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검색해보니 1996년 '꽃다지'의 대표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공연이 있었는데 이 때의 공연에 대한 느낌을 정지원이 시로 표현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민주화를 꿈꾸며 젊음을 바치신 분들이 많다. 또한 남북통일을 꿈꾸며 생애를 희생하신 분들도 많이 계신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민주화된 대한민국 그러나 통일되지 않은 분단된 국가를 살고 있다. 요즘 통일을 강조하면 사회주의와 좌파에 물든 것처럼 오해가 되기도 하고 자유 경제체제에 따른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옹호하면 지나친 우파라 오해받기도 하는 시대에 정치적으로 좌냐 우냐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좌이든 우이든 보수 진보를 떠나 오늘날 강조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이다.
돈때문에 높은 자리 때문에 이름 때문에 사람이 짓밟혀지고 찢겨져 버렸다. 이념과 이데올로기로 인해 좌와 우가 나뉘어지고 부모와 자녀가 등을 돌리게 되었다. 더 이상 땀 냄새조차 나지 않는 사람 사는 세상에 피 비릿내만 점점 더 커져갈 뿐이다. 넥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드라마가 전세계 80여개국에서 흥행하고 있다. 나는 유투브로 짤만 보고 대략적인 평들을 보았지만 너무나 잔인한 행동이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어렸을적 구슬치기, 딱지치기, 줄다리기, 오징어 게임 등 순수한 게임을 소재로 너무나 잔인한 행동을 일삼는 모습 그리고 멈출 수 있었음에도 끝까지 최후의 1명이 되기 위한 욕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인간의 완악함이 그저 드라마속 모습이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의 한 모습이라는게 부끄럽다.
그래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니 사람이 돈보다 아름답고 소중하고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금 전세계가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가속화 되고 물가상승, 부동산 폭등 등 자본주의로 인해 몸살을 안고 있다. 꽃에 묻은 진흙으로 인해 꽃이 무분별하게 짓밟혀지고 있다. 도저히 회복하기 힘든 깨진 유리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상처와 아픔은 이루 상상하기 힘들뿐이다.
그저 남들이 다하는 대세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보고 듣고 느끼지만 마음 한 구석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이건 아니지만 너무 고리타분하게 풍류를 거스르는 이야기를 하노라면 젊은 꼰대로 낚인 찍힐 수 있어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는 안타까운 일들이 즐비하다. 재미있다면 모든게 용서가 되고 감동을 준다면 영혼이라도 팔아서 눈물을 만들거 같은 오늘날의 문화 속에서 올바른 분별력을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사람이 왜 꽃보다 아름다운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가치는 있는 존재인가? 진화론자나 유물론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저 적자생존에 의해 살아남은 고등동물이기 때문에 가치있고 고귀한 존재라면 또 다른 진화된 존재 앞에서 사람의 존엄성은 곧 상실되어 버릴 것이다. 좀 더 냉철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또 다른 존재로 진화되기보다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 누구도 통제할 수 없고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하기 힘든 그런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괴물이 되어가려 할때 그래도 사람이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이야기해줄 그 사람이 필요하다. 과거 한 시인은 사람이 모든 만물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를 다음의 시로 표혔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편139:13-1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주께서 사람을 심히 기묘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창1:27). 아무리 부족하고 루저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사람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을 닮았다. 오직 사람의 가치는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라는 그 사실을 아는 것에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사람 1명당 1억의 적립금이 쌓여 최후 1인에게 456억이 입금되었다. 사람의 가치가 1억, 2억, 5억, 456억...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세상은 사람이 이룬 업적 성취 결과에 집중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밷어버린다. 나와 이념과 노선이 같으면 품고 선을 넘어서면 버려진다. 가진게 많으면 친구가 되고 빼먹을게 없으면 무시해버린다. 그래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조금더 올라가서 지배하려고 더 열심히 산다. 더 힘을 기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힘을 길러도 내가 올라 갈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이 있음을 발견한 순간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당을 짓는다. 공평과 정의라는 미명으로 가진 자의 권리를 빼앗으려하고 필요하지 않는 것들을 있어야 하는 것처럼 꾸며댄다.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사람을 생각해서 사람을 죽여버리는데 사용되어진다. 이러한 전쟁 같은 게임 속에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금 알아야 할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네가 지금 죽이려고 했던 친구임을 아는 순간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게 될 것이다. 그토록 피 비린내까지 참으며 얻으려고 했던 이유가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너를 위한 것임을 깨달을 때 부등껴 안을 수 있다. 이미 베어지고 찢겨진 상처를 감싸주고 품어주자. 꽃보다 아름다운 그들에게 더 이상 희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들을 안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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